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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이름:고명철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0년, 대한민국 제주도

직업:문학평론가 대학교수

최근작
2024년 3월 <서울리뷰오브북스 13호>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위선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는 혁명의 꿈꾸기 무릇 혁명을 꿈꾸는 자 꽃나무를 닮아야겠다 가지가 꺾이고 줄기가 베여도 뿌리 남아 있는 한 악착같이 잎 틔우고 꽃 피워 마침내 열매 맺어야겠다 저마다의 외로움을 나이테로 새기면서 지평을 푸르게 물들이다가 꽃들을 다 내려놓고 쓰러져야겠다 이웃한 나무들의 거름으로, ― 이재무, 「혁명」 전문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는 상식과 양심이 심하게 뒤틀린 현실에 에워싸여 있다. 진실이 호도되고, 진실을 은폐시키고, 더 나아가 진실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시대 퇴행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어처구니없는 언어의 향연들이 우리의 삶 안팎을 배회하고 있다. 진실과 참된 삶을 갈구하는 언어들이 온갖 폭력 속에 신음하고 있다. 거짓된 것들에 대한 시대양심의 분노가 왜곡되고, 도리어 시대양심에 대한 거짓된 것들의 타매가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비정상성이 정상성의 자리를 꿰차고 들어온다. 그렇다고 우리는 진실의 언어를 폐기처분할 수 없다. 현실이 암연(暗然)의 사위에 갇혀 있을수록 진실을 향한 우리의 언어는 촉수를 바짝 곤두세워야 한다. 그리고 거짓이 난무하는 삶과 현실을 전복하는 혁명의 꿈꾸기를 포기해서 안 된다. 우리가 함께 꿈꾸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혁명에 수반되는 상처와 고통을 두려워해서 안 된다. 이 혁명은 꽃나무의 생태를 닮은 것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온갖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가지가 꺾이고 줄기가 베여도” 꽃나무가 지닌 강인한 생명의 기운을 뿌리로부터 길어올리듯, 대지에 뿌리를 넓게 깊숙이 뻗으면서 대지와 격정적 사랑을 나누고, 그로부터 솟구친 생의 기운이 나뭇가지 고루고루에 미치며 바람과 애무를 하고, 우주와 장엄하게 그러면서 소박하게 만나듯이 진실의 열매를 맺기 위한 꽃나무의 생의 기운을 품어야 한다. 그리하여 “뿌리 남아 있는 한 악착같이 잎 틔우고//꽃 피워 마침내 열매 맺어야겠다”는 의지를 갈무리해야 한다. 여기서 이 같은 혁명의 꿈꾸기는 오로지 열매를 맺는 데만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 꽃 피우고 열매를 맺은 후 “이웃한 나무들의 거름으로” 돌아가, 언젠가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생명의 힘을 온축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렇다. 이번 평론집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씌어진 내 비평의 언어가 꿈꿨던 것은 거짓 세상 속에서 진실이 존중받는 삶과 현실을 향한 혁명이다. 부박한 현실에서 부유하지 않고 삶의 대지에 뿌리내린 진실의 언어가 지닌 아름다운 가치의 일상적 실현을 꿈꾼다. 물론, 이것을 꿈꾸는 내 비평의 언어가 투박하여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비평의 언어가 문학판에서 공명(共鳴)되지 못하고, 더욱이 사회적 공명과도 거리가 멀어버린 현실에서 내 비평의 언어가 무기력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하지만 이럴수록 나는 믿는다. 진실을 추구하는 우직한 언어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이곳의 비평의 언어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거짓이 판치는 세상과 불화하되, 아름다운 진실의 가치를 향한 혁명의 꿈꾸기를 가열차게 꾸기 위한 생의 기운을 품는 데 전심전력을 쏟아야 하는 것을. 그리하여 우리 시대의 시와 비평이 함께 이 위선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는 문학적 투쟁의 전위임을.

문학의 중력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토론과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자명한 것으로 간주된 모든 것들, 앞서 언급했듯, 개인의 욕망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데 따른 민주주의의 문제를 비롯하여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삶의 내용-형식을 망라한 숙고와 성찰이 절실하다. 팬데믹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팬데믹 이후의 현실을 맞이해서는 곤란하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엄정히 성찰해야 할 사안이 있다. 아주 지극히 상식적인 사안이다. 인간이 ‘지구에 살고 있다’는, 이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너무나 쉽게 망각하고 있다. 인간은 지구에 살면서 중력을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살고 있다. 태어나 죽기까지 인간은 땅을 떠나서 살 수 없다. 그만큼 인간은 평생 중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인간의 숙명이며,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이다. 중력을 체감하면서 산다는 것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종의 하나로서 인간을 인식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지구에서 살고 있는 뭇 생명체들과 공존 및 상생하는 생명체로서 인간에 대한 인식을 벼려야 한다. 이것은 서구의 근대적 인식에서 핵심인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래디컬한 비판이 가열차게 펼쳐져야 할 뿐만 아니라 인간중심주의에 뿌리를 둔 서구의 근대와 또 다른 ‘대안의 근대’를 모색해야 할 과제가 제기된다. 작금의 팬데믹이 우리에게 준열히 다그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래디컬한 비판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내게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인간의 삶과 현실의 구체성을 한층 넓고 깊게 성찰해야 한다는 비평의 과제로 다가온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명과 문화란 이름 아래 지구촌 곳곳에서는 숱한 생명들이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다. 말로는 지구의 생태를 보호해야 한다고 하면서, 실제 행동은 정반대의 모습을 서슴없이 보이고 있다. 인위적으로 개발된 곳에서는 인간의 오만함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신성한 교감’이 삭제된다. 새로운 지식의 위용과 개발의 그럴듯한 포장 속에서, ‘신성한 교감’이 생성해내는 존재의 신비와 경외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때문에 문명과 문화의 아름다운 가치를 잃어버린 인간의 파괴적 행위에 깃든 반인간적 행태야말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인간중심주의적 인식에 갇혀 살아야 할까. 우주의 존재들에 대한 겸허한 관계 맺기, 그로부터 자연스레 샘솟는 ‘신성한 교감’을 통해 인간의 삶의 가치를 성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절실히 추구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중략) 나로서는 첫 산문집을 묶는다. 얼마나 주저하고 망설였는지 모른다. 그동안 문학비평가로서 비평작업에 쉼 없이 매달려온 나로서는 문학비평의 형식이 아닌, 다른 형식의 산문을 통해 세상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작가들이 유려한 문체로써 존재와 세상의 비의를 드러내고, 인간의 삶에 대한 넓고 깊은 통찰을 보이는 것과 비교해볼 때, 내 글은 투박하고 거칠고, 얕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어 부끄러울 따름이다. 다만, 최근 몇 년간 사회 여러 부문에서 보이는 역사의 퇴행, 즉 거꾸로 된 시간 속에서 불면을 견디며, 내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과의 ‘신성한 교감’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현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는 것으로 변명을 삼고자 한다. ―「책을 내며」에서

칼날 위에 서다

나는 우리 시대의 비평이 무녀의 신들린 춤사위를 닮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본다. 냉철한 이성적 사유로 조직된 언어의 향연이 아니라, 온몸의 신경을 팽팽히 곧추세운 채 마치 신들린 것처럼 한바탕 신명나게 춤을 추는 그러한 비평을 욕망한다. 이것은 비평의 행위예술이다. 비평가의 땀내음이 물씬 풍기는 비평의 노동이다. 그 누가 이렇게 혹은 저렇게 춤을 추라고 가르치지 않더라도 저절로 원시적 리듬에 몸을 맡긴 채 칼날 위에 서서 춤을 추는 자유분방한 전위적 퍼포먼스다. 비평이 우리 시대의 시퍼런 칼날 위에 서려고 하지 않으니, 신명난 비평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녀의 굿판처럼 비평가의 비평의 굿판은 신명이 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평의 신명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 비록 내 비평마저 신명을 잃었을지 모르나, 사그라지는 신명을 되살려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태로운 칼날 위에 서야 한다. 그 칼날 위에서 한바탕 신명난 춤을 추어야 한다. 완급을 조율한 무녀의 춤사위가 그렇듯 내 비평 역시 그러한 춤을 추기를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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