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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인문/사회과학

이름:김수업

출생:1939년, 대한민국 경상남도 진주

사망:2018년

최근작
2021년 3월 <양반전 외>

배달말 가르치기

학문이 학문만으로 있기로 하면 모르거니와 사람과 삶이 더 나은 쪽으로 가도록 돕기로 한다면 세상을 버리고 저만 내달릴 수는 없지 않은가? 배달말을 가르치는 학문이 교육의 현장을 보살피지 못하고 현장에서는 알아들 수도 없는 논문과 책만 수북이 쌓아놓으면 되는가? 그것이 학생과 교사의 삶을 이끌지 못하고 오히려 힘을 빼고 길을 막는 걸림돌이 되어서야 쓰겠는가? 현장과 함께 학생과 교사의 말벗이라도 되어주면서 더불어 나아가는 학문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겨레의 말과 삶을 다루는 노릇이니 남의 흉내보다는 우리를 깊이 살펴서 남다른 집을 세워보는 학문이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터전을 꼼꼼히 살펴서 우리 삶의 터를 고르고 주춧돌을 놓는 학문이 허술한 탓에 배달말 가르치기는 여태 올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것 아닌가? 이런 물음이 가슴에 똬리를 틀고 앉아 나를 이렇게 맴돌게 하는 것이다.

우리말은 서럽다

말이란 쉬지 않고 흔들리며 바뀐다. 말의 소리도 그렇고 말의 뜻도 그렇다. 그러나 말이 저 혼자 마음대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말을 쓰는 사람들, 그들의 몸과 마음이 바뀌니까 따라서 바뀌는 것이다. 사람들의 몸과 마음도 제멋대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들고 둘러싸고 살아가게 하는 자연과 사회가 바뀌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서 바뀌는 것이다. 말이 흔들리고 바뀌니까 더러는 저들끼리 소리도 헷갈리고 뜻도 헷갈리는 수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헷갈리는 대로 가만히 놓아두면 사람들이 살기가 적잖이 어려워질 수가 있다. 교통 신호가 나가 버린 네거리처럼, 말을 주고받는 마음들이 뒤엉키고 헷갈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동서고금을 묻지 않고 아이를 키우면서 말을 올바로 쓰도록 가르치는 노릇을 게을리 하지 않고, 학교에서도 말 가르치기를 가장 공들여 해 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부가 나서서 맞춤법을 만들고, 표준말을 정하고, 발음 규정을 만들고, 외래어 표기법을 마련하고, 국어사전을 만들고, 마침내 한글전용법이니 국어기본법이니 하는 법률까지 만드는 까닭도 마찬가지다.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자연과 사회의 만상이 바뀌는 것이나 사람의 몸과 마음이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 바뀌는 것도 나름대로 올바른 길이 있다. 빛을 받고 거름을 먹고 북돋움과 사랑을 받으면 무럭무럭 자라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 쪽으로 바뀌고, 그늘에 가리고 배를 곯고 짓밟힘과 미움에 시달리면 메마르고 뒤틀려서 헝클어지다가 마침내 죽어 버리는 쪽으로 바뀐다. 안타깝게도 우리 겨레의 토박이말은 오래도록 뒤쪽 길을 걸었다. ‘놀다’와 ‘쉬다’도 그런 쪽으로 밀려가며 뒤틀어지고 헝클어져서 헷갈리기에 이르렀다. 서둘러 빛을 쏘이고 거름을 넣고 북돋움을 하고 사랑을 주어서 살아나는 쪽으로 길을 돌려야 하겠다. 본살대로 제 뜻을 지니고 제 몫을 다하도록 바로잡아 주어야 하겠다. 이것이 우리말을 사랑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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