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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허깨비 신이 돌아오도다>

백관의 왕이 이르니

대학교 학회 합평회 때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소설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이 주제를 말하기 위해 판타지 소설일 필요는 없었다. 왜 장르소설을 쓴 것인가?” 이후로도 종종 사람들은 내게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매번 일일이 답할 수 없는 바(그리고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이유에서) 이 자리를 빌려 답하고자 한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크게 두 가지 질문 앞에 선다. 하나는 ‘무엇을 쓸 것인가’인데, 나는 이 질문에 관심이 있었던 적이 없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때까지 내가 읽은 것은 도서관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댄 브라운, 파울로 코엘료 또는 대여점의 이우혁, 이영도, 김정률이었다. 사람은 읽은 것을 쓰게 된다. 그러니 나는 무엇을 쓸 것인지 고민하지 않고, 그냥 장르소설을 썼다. 또 다른 질문은 이것이다. 제도권 문학 장에서는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으로서의 소설을 고민하기 때문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 또한 내 흥미 밖이었다. 나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없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장르소설을 구성하는 장르 규범과 클리셰, 플롯 장치로 기존의 장르적 맥락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면서 동시에 지금까지는 없었던 낯선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내냐는 것이다. 당연히 내가 쓴 소설들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나름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주제라는 것은 자폐적이거나 메타픽션적이고 세카이적 상상력에 천착하거나 유카타스트로프를 형성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다른 의도가 표백된 보다 순수한 장르성을 증거하며, (선후가 뒤바뀌었으나)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라고도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나는 장르소설의 역사적 맥락을 따라 타성으로, 그리고 장르소설 작법 방법론으로서 장르소설을 쓴다. 이상한 대답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이상해 보이는 이유는 ‘왜 장르소설을 쓴 것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장르소설을 제도권 밖 주변부로 가정해 던지는 이상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은 장르소설을 쓰는 것이 그렇지 않은 소설쓰기에 비해 유난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야만 던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질문을 뒤집어 다른 모든 비장르소설을 향해 던지면 이렇게 된다. ‘왜 장르소설을 쓰지 않은 것인가?’ (물론 나는 그런 질문을 던질 정도로 무례하지는 않다.) 2022년 겨울

허깨비 신이 돌아오도다

소재 면에서 이 글에 크게 영향을 준 것은 세 가지다. 하나는 코즈믹호러다. H. P. 러브크래프트를 본령으로 하는 이 SF와 호러의 교잡종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서며 다소 우스운 농담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근대 이후를 살고 있고, 우주의 끝없는 광대함에 질려버리는 것은 학생 시절 《코스모스》나 《엘러건트 유니버스》 같은 책을 읽을 때나 우주의 크기를 가늠하는 유튜브 영상을 볼 때 정도니까. 더는 우리를 개미처럼 생각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해 공포심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지식과 인식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의 정신이 정말로 근대에서 현대로 도달했는지는 의심하곤 한다. 가끔씩이나마 코즈믹호러가 작동한다면 그러한 연유 때문이 아닐까. 다른 하나는 이인증(離人症)이다. 이인증은 많은 정신장애의 증상 중 하나이며 낮은 세르토닌 수치를 암시하고, 유체이탈을 설명하기도 한다. 논리적으로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인증을 겪으면 마치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증거를 찾아낸 것만 같다. 세 번째는 되감기다. 앞서 언급한 젤라즈니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이나 Number None에서 제작한 퍼즐 게임 〈브레이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테넷〉같은 작품이 유사한 소재를 사용한 작품이다. 시공간 전체가 아닌 부분만을 되돌려 불완한 것을 완성하는 작업은 향유자의 일반적인 인식을 거스르는 구석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이해가 시간순행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불가해함에 대한 도전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주제적인 측면에서 이 소설은 내 단편 〈미궁에는 괴물이〉와 유사하다. 그리고 그 단편은 오래된 신화와 모티프들에 기대고 있다. 이런 반복되는 이야기는 질렸고 더는 할 필요가 없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여전히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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