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시경황해도 봉산 출생. 국어학자. 초명은 상호相鎬, 일명 한힌샘, 백천白泉.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1894년 9월 배재학당에 입학. 도중에 탁지부 관비생으로 선발되어 인천부 관립이운학교 속성과 관비생으로 선발되어 졸업. 1896년 4월 다시 배재학당 보통과에 입학. 1896년 4월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에게 발탁되어 독립신문사 회계사무 겸 교보원이 됨. 순한글 신문제작에 종사하게 되자, 그 표기 통일을 해결하기 위한 국문동식회를 조직하여 그 연구에 진력함. 동시에 서재필이 주도하는 배재학당협성회, 독립협회에 참여하였다가 영국 선교사 스크랜턴의 한어교사, 상동청년학원 강사를 지내면서 1900년 6월에 배재학당 보통과를 졸업. 신학문에 대한 지식 열정으로 야간에 흥화학교 양지과를 마치고, 정리사에서는 수물학을 3년간 하여 34세가 되도록 공부함. 명신학교, 숙명여자고등학교 등의 강사 활동과 배재학당협성회 전적과 찬술원, 독립협회 위원, 서우학회 협찬원, 대한협회 교육부원, 보중친목회 제술원 등을 통한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함.
대표작
모두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