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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배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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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다른 세계와 나>

배도임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서 리루이 소설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대학 중국언어문화학부 시간강사로 강의하면서, 중국 현대문학 연구와 번역 소개를 하고 있다. 역서로는 『한밤의 가수』, 『장마딩의 여덟째 날』, 『바람 없는 나무』, 『만리에 구름 한 점 없네』, 『만사형통』(공역), 『중국은 루쉰이 필요하다』(공역) 등이 있고, 『중국 당대 12시인 대표시선』(공저)을 편역하였다. 논문에 「장후이원의 단편소설 「달 둥근 밤」 속의 ‘내면의 낯설음’ 연구」, 「린리밍의 『아Q후전』 속의 ‘식인’주제 읽기」, 「자핑와(賈平凹)의 장편소설 『진강(秦腔)』의 주인공 장인성(張引生)의 ‘욕망’읽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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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심연 한시집> - 2020년 1월  더보기

옛 선비의 숨결과 시의 그윽한 향기를 찾아서 『심연 한시집(心淵 漢詩集)』의 번역을 맡게 되었을 때 두려움이 앞섰다. 중국 현대문학을 전공했고, 중국 현대시와 현대소설을 번역했으며, 중국 고전문학을 강의하기도 했지만, ‘한시(漢詩)’는 한국문학에 속한 것이고, 더욱이 한국문학에 대해 수박 겉핥기 정도만 알고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본인으로서는 분명 커다란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번역을 하면서 외람되긴 하지만 이 시집 번역을 맡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문학에 대한 이해 없이는 우리의 한시를 제대로 번역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또 전고(典故)를 제대로 파악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중국 고전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고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연 한시집』은 다행히 빛을 보게 되었지만, 더 많은 옛사람이 남기신 귀중한 자료들이 사라져버렸을 것이기에, 학문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너무 아팠고, 갈수록 책임감이 깊어졌다. 심연 선생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버지 세대 분이시고 어림잡아 한 세기 이전 시대에 사신 분이시다. 본인은 그분의 모습을 1941년도의 사진에서 뵈었다. 하얀 한복을 입고 두 손을 무릎에 얹고 곧은 자세를 하셨다. 그분의 시를 번역하는 중에 사진으로 뵌 것이다. 아! 이런 분이셨구나! 시처럼 깨끗하고 꼿꼿한 분이시구나! 또 다른 사진 한 장에서 그분이 아주 어린 손자를 안고 계셨다. 김태홍 교수님께서 “이 아기가 바로 나”라고 말씀하셨다. “아기가 아주 똘망똘망하게 생겼네요!”하고 대답해드렸다. 「새해에 처음 감회를 적다(歲初述懷)」라는 시에 ‘어린 손주 이제 말을 알아들어 기쁘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말을 알아들은 손주는 바로 김태홍 교수님이셨을 것이다. 사진은 거의 80년 전의 것이고 색이 거의 다 바래 희미하지만, 사진 속의 아기는 정말 이목구비가 또렷해서 전혀 빈말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 시를 번역하면서 후손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고, 사진 속의 아기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빙긋이 웃었다. 지금의 김태홍 교수님 모습에서 그 아기 때 모습을 찾으려면 아마 힘들 것이다.(김태홍 교수님께서 양해해주시겠지!) 시든 소설이든 모든 문학예술에 대한 감상은 독자의 몫이라고 여긴다. 번역을 하는 옮긴이도 독자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심연 선생의 시를 제일 먼저 읽은 독자이다. 가능한 한 한자어의 사용을 피하고 시인이 시를 지을 때의 시적 정서와 아우라를 아름다운 한글로 옮겨보려고 노력했다. 선생의 호(號) ‘심연(心淵)’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을까? 말년에 지은 「자조(自嘲)」 속의 마지막 구절에서 ‘평소 마음 감히 연못의 맑음에 비긴다’고 하였다. 바로 ‘소박한 마음이 연못처럼 맑다’는 뜻이라고 사료된다. 주변 분들의 축수시(祝壽詩)에서도 ‘마음의 연원’(만봉 안종환), ‘마음 맑고 못이 깨끗함’(경운 오두식), ‘마음이 맑은 연못 같은 심연’(지산 정운회)이라고 표현했다. 시를 통해서 만난 선생은 우리네 선비의 기품을 간직하고 또 그렇게 한평생을 꼿꼿하게 사신 분이라고 생각된다. 옮긴이는 그야말로 선현(先賢)의 멋과 시가 담은 그윽한 향기를 실컷 누리고 그래서 행복했다. 이것도 번역이 주는 즐거움이다. 『심연 한시집』은 모두 한자(漢字) 4만여 자에 이르며, 한시 740여 수이고 산문(散文) 3편이다. 그 가운데 56수는 지인들의 축수시이고, 선생의 작품은 제4부 심연수첩(心淵壽帖) 속의 「심연 스스로 짓다(心淵自述)」를 포함해 한시 680여 수와 산문 2편이다. 대부분 칠언율시(七言律詩)와 칠언절구(七言絶句)이고, 오언율시(五言律詩)와 오언절구(五言絶句) 등도 수록되어 있다. 한글로 옮기면서 임의로 소재와 내용에 따라 시를 분류해 보았고, 선생이 3·40대부터 노년까지 벗들과 교류하며 화답하여 지은 시가 350수 이상으로 가장 많았다. 만약 시사시(時事詩) 40여 수도 포함시킨다면 400 수 정도에 이른다. 그 가운데는 시회(詩會) 활동과 경물시(景物詩)도 포함된다. 그리고 영물시(詠物詩) 120수, 축수시나 축하시 69수와 생각나는 대로 읊은 시 80여 수 정도이다. 또 산문은 2편인데, 「윤 몽양의 행헌에 부치다(寄尹夢陽行?)」(시 포함)와 「일성 이준 공을 애도하며 짓다(一惺李公儁祭文)」이다. 시를 통해서 보면, 이름난 땅이나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한 정자를 찾아 지은 경물시가 압도적으로 많다. 심연 선생은 계산(桂山), 상산시사(常山詩社), 영사(泳社) 등 서울과 충청북도 청주(淸州) 일대의 많은 시회(詩會)에 참여하고 동시대의 시우(詩友)들과 폭넓게 교류했다. 이분들의 시회 활동은 그저 벗들과 어울려서 명승지를 단순히 유람하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고 그 흥에 따라 재주를 뽐내면서 시를 지어낸 것이 아니다. 선생은 명승지마다 유적지마다 담고 있는 민족의 얼과 혼, 역사적 사실과 발자취를 남긴 인물, 나라의 운명 앞에 좌절하고 실의한 선비로서의 충정, 날카로운 비판과 반성 그리고 걱정근심에 곁들여 개인적인 감회를 녹여냈다. 독자는 아마 20세기 초엽까지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때 그 시절에 심연 선생과 같은 무명(無名)의 우국지사들이 명승지와 유적지를 찾아 실의와 감회를 읊으며 옛사람의 숨결과 정신을 기렸던 숱한 역사의 현장들이 불과 백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해 사라져버렸다는 점도 덧붙여 말해두고 싶다. 또한 선생을 비롯한 당시 문인들이 활발하게 참여하고 활동했던 실제 상황과 그 많은 시회 관련 자료와 작품들이 모두 사라지고 남아 있지 않아서 너무 안타깝다. 선생의 가장 친한 벗은 ‘몽양(夢陽)’이라는 분 같고, ‘일오(一悟)’와 ‘괴은(槐隱)’이라는 분의 댁에서 지은 시가 많은 것으로 보아 그분들 댁에서 크고 작은 시작(詩作) 모임을 자주 열었던 것 같다. 선생은 조선 말엽에 태어나셔서 20세기 중반 한국전쟁에 이르는 격동의 세월을 사셨다. 어려서는 한학(漢學)을 배우셨을 것이고, 젊은 시절에는 경제 활동을 하였다고 해도, 시대적 상황과 나라의 운명으로 인해 울분을 품은 채 초야에 묻혀야 했고, 귀향하여 은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詩)마다 자나 깨나 나라사랑과 시대를 걱정하는 선생의 절절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서울과 근교의 당시 풍광을 산수화처럼 묘사해서 번화한 서울의 모습만을 알고 있는 독자들은 옛날 사진첩을 보는 것 같을 것이다. 또 청주 지역의 맏슬내(無沁川), 상당산성(上黨山城), 탄금대(彈琴臺) 등 역사와 얼이 깃든 유적지와 경치 좋은 곳을 소재로 지은 경물시에서는 고향 땅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한 글자 한 글자에 녹여냈고, 사료(史料)로서도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으나 라디오나 축음기 같은 새로운 사물에 대해 읊은 영물시에서는 세심한 관찰력과 반짝이는 재치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난초, 대나무와 같은 자연 사물을 소재로 한 시에서는 철학적 사유와 인생관이 드러난다. ‘소유(小遊)’라는 말로 표현한 유학자적인 선비 정신과 의기, 소를 타고 관문을 나서는 노자(老子)와 나비의 꿈으로 말해지는 장자(莊子)의 소요(逍遙), 도연명(陶淵明)으로부터 시작된 전원생활과 은거, 이백(李白)의 낭만, 두보(杜甫)의 리얼리티, 소식(蘇軾)의 풍류, 벗들과의 교류 속에 담긴 불교적인 공(空)의 세계 등이 모두 선생의 정신 색채이자 시적 세계임을 보여준다. 모르기는 몰라도 선생과 벗하고 시를 교류했던 분들이 거의 대부분 비슷비슷한 삶을 사셨을 것이다. 제4부 기술잡초(記述雜抄) 후반부는 그 동안 당신이 교류했던 벗과 시회(詩會)에게 보내는 시들이다. 당신이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며 정리하신다는 느낌이 들어서 숙연한 마음으로 번역했다. 『심연 한시집』은 심연 선생의 정신사(精神史)이자 문학의 길을 투영시킨 시들을 모아 엮은 결정체이다. 시마다 시인의 혼이 깃들고 그분의 발자취이며, 또 지나온 삶을 말하지 않은 것이 없다. 4만여 자의 한시(漢詩) 700여 수 가운데서 옮긴이로서 가장 감동한 시는 사실 시가 아니고 제문이다. 「일성 이준 공을 애도하며 짓다」를 번역할 때의 기분은 중국 시와 소설을 번역할 때의 감상과는 사뭇 달랐다. 시문에 따라 내 가슴이 먹먹해졌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제문을 쓰신 분은 이런 내 마음보다 더 뜨거우셨으리라. 그래서 『심연 한시집』을 번역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더욱 들었다. 시집의 번역을 맡겨주신 출판사, 그리고 옮긴이에게는 난해하기만 한 초서(草書)를 가르쳐주시고 한시(漢詩) 작법을 일깨워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문학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것’이 사라져가고 있는 요즘,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것조차도 사치처럼 여겨지고, 학술연구 자체가 죽어버린 때, 더구나 현대시도 아닌 한시를, 할아버지의 유작(遺作)을 번역해 출판하기로 결정하고 애쓰신 김태홍 교수님께 삼가 경의를 표한다. 심연 선생께서 아신다면 흐뭇한 미소를 지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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