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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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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영관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57년, 대한민국 전라남도 함평

사망:2007년

최근작
2023년 5월 <꿈속의 꿈>

조영관

1957년 함평에서 출생했다. 1972년 단식으로 부모를 설득해 서울의 성동고등학교에 진학하고 1984년 서울시립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여러 편의 문학평론을 교지에 발표할 정도로 문학에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었다. 대학을 졸업한 1984년에 출판사 일월서각에서 일하다가 1986년에 퇴사해 구로공단, 독산동에서 고 박영근 시인과 학습모임을 꾸리기도 했다. 그 후 인천으로 건너가 노동운동에 투신, 안기부에 의해 수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1987년 동미산업(주)에 취업해 노조를 세우고, 1988년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임금인상 파업 도중 구사대에게 폭행을 당하고 결국 해고되었다. 그 후 인천 남동공단의 현대기계에서 잠깐 일한 것을 제외하고는, 건설노동자 생활을 주로 했다.

2000년 『노나메기』에 「산제비」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같은 해 해남의 암자에서 장편소설 ‘철강지대’를 쓰기도 했다. 다시 상경하여 노동자 공동체 운동을 구상하다 2002년에 『실천문학』 시 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2005년 노동자 공동체 ‘햇살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2006년에 간암 판정을 받고, 2007년에 영면했다. 2008년에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인 『먼지가 부르는 차돌멩이의 노래』가 출판되었다. 2011년 2월 19일 추모비가 마석 모란 공원묘지에 세워졌다. 그의 이름을 딴 ‘조영관창작기금’이 만들어져 2017년 현재 7회 수혜자까지 배출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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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먼지가 부르는 차돌멩이의 노래> - 2008년 2월  더보기

한때 문학청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현실의 완강함에 비추어 그때는 시를 쓴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보다 더 급한 것들이 그 시절엔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다면 다시 필을 잡아들게 한 것은 무엇인가. ... 밥 벌어먹자고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면, 폼을 잡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면, 내 쓰는 글이 땀을 흘리는 것보다 정녕 부끄럽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는 시가 황소보다 힘이 세다는 것을 믿는다. - 「실천문학」2002년 가을호, '신인상 당선 소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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