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국내저자 > 에세이
국내저자 >
국내저자 > 인문/사회과학
국내저자 > 번역

이름:김화영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41년, 대한민국 경상북도 영주 (쌍둥이자리)

직업:대학교수 시인

기타:1967년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 학사, 동 대학원 석사, 1974년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작
2023년 12월 <디 에센셜 알베르 카뮈 (무선 보급판)>

이 저자의 마니아
마니아 이미지
로쟈
1번째
마니아
마니아 이미지
chik...
2번째
마니아
마니아 이미지
물고기자...
3번째
마니아

12

걷기예찬

세계가 우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파악하기 어려워질 때 그 지주로서 남는 것은 몸이다. 몸은 알쏭달쏭하여 감이 잡히지 않는 삶 속에서 살을 다시 찾아가질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다. 몸을 다듬는 것은 세계에 매달리는 하나의 방식으로 변했다. 몸은 무한히 재조정되는 어떤 아이덴티티의 부대사항으로 승격했다. 외관은 가장 밀도 짙은 깊이의 장소가 되었다. 폴 발레리가 말했듯이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 그래서 <걷기예찬>은 삶의 예찬이요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 인식의 예찬이다. - 김화영 (옮긴이)

김화영의 번역수첩

정확하게 세어본 것은 아니지만, 1969년 르 클레지오의 산문 『침묵』을 번역한 이래 내가 지금까지 약 46년 동안 번역 출판한 책이 100권은 넘는 것 같다. 저서의 수가 그 이상인 이도 있고 전문 번역가들 중에는 200권이 넘는 책을 번역 출판한 이도 있다. 거기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 자신은 뒤를 돌아보며 그 숫자에 놀란다. 스스로 쓴 저서보다 다섯 배도 더 많은 책을 나는 번역한 것이다. 뭘 이렇게 많이 번역했단 말인가. 무슨 쓸데없는 일에 이리도 오래 골몰했던 것일까? 나는 왜 이렇게 번역에 매달렸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쉽지 않고 단순하지도 않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 ‘혐의’만은 지워지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어둡게 남아 있다. 어쩌면 나는 내 글을 쓰는 대신 번역을 하면서 나 자신의 글쓰기에 알리바이를 만들고 그 환상 뒤에 숨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늘 글쓰기에 매혹되면서 글쓰기를 두려워했다. 정확하게 말해서, 나는 늘 글의 첫 문장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다. 그것이 시든 산문이든 평론이든,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첫 문장의 시작을 못해서 늘 다른 책을 읽고 노트에 끼적대고 음악을 듣고 친구를 만나고 잠을 자고 술을 마시고 여행을 떠나고 거리를 헤맨다. 그러나 일단 첫 문장을 시작하면 불안정한 걸음걸이로나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정말 나의 글쓰기에 있어서는 진정으로 시작이 반이다. 그런데 번역은 누군가, 그것도 대부분 내가 글쓰기라는 면에서 좋아하고 찬미하는 터인 누군가 이미 시작해놓은 것을 뒤에서 따라가면 된다. 그야말로 나의 가장 고통스러운 어떤 것을 대신 해준 사람의 노고에 편승하는 일이다. 일단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처럼 두려워도 달려야 한다. 그 등에서 내리면 잡아먹힐 것 같으니까. 아니, 잡아먹겠다고 위협하는 쪽이 이번에는 나 자신이 된다. 그래서 두렵고 힘겨워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과정이 알게 모르게 수십 년간 되풀이되었다. 내가 ‘시작’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번역의 과정이 어찌 즐겁기만 하겠는가. 더러는 도중에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 자신의 글쓰기와는 달리 번역은 오랫동안 덮어두었다가 다시 시작해도 큰 손상이 따르지 않는다. 가끔 너무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면, 자신이 위대한 작곡가의 곡을 해석하는 일종의 연주자라고 자위해보기도 하고, 위대한 작품을 정독하는 가장 유별난 방식이 번역이라고 변명도 해본다. 그런데 한 권의 책을 번역하는 오랫동안의 수고가 끝나면, 완주지점에 어렵게 도착한 마라톤 선수에게 한 바퀴만 더 돌고 오라는 주문처럼 또하나의 고단한 일이 눈앞에 놓인다. 그것이 바로 ‘역자후기’라는 글쓰기의 주문이다. 더러는 짧은 안내나 여담으로 끝내버린 경우도 있고 더러는 긴 ‘해설’로 장황스럽게 벌여놓은 글도 있다. 여기에 한데 묶어 펴내는 글들은 바로 지치고 지친 마라톤 주자가 마지막 남은 기운을 긁어모아 단내 나는 호흡으로 추가하여 질주한 한 바퀴의 기록들이다. 책을 내기 위하여 오랫동안 먼지에 쌓인 책들을 뒤적거리자니 문득 중국 설치작가 송동이 2006년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하여 대상을 받은 작품 <버릴 것 없는Waste not>이 생각났다. 작가는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상심한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하여 어머니가 50여 년 동안 버리지 않고 집안에 무질서하게 쌓아두었던 옛날 물건들, 헌책, 신문, 박스, 볼펜, 장난감, 옷가지, 가구, 신발, 텔레비전 등 1만여 점의 물건들을 꺼내어 어머니의 기억이나 역사적 순서에 따라 정성껏 정리 배열하였다. 한 생애의 시간이 설치공간으로 정리되어 눈앞에 놓인다. 이 작품은 곧 문화혁명을 포함한 사회적 격변기에 중국을 살았던 한 서민 가정의 내밀한 역사인 동시에 외로움과 슬픔에 쌓인 채 고립되어 있던 어머니를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한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쓴 ‘역자 후기’들 중 대부분을 버리고 글 자체의 가치나 흥미보다는 번역 대상이 된 책들의 성격이나 가치에 따라 그중 몇 편만을 추렸지만, 이 역시 한 시대를 살았던 내 먼지 앉은 내면적 기억들을 정리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쓰다듬고 치유하고 이해하려는 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카뮈 전집』은 전 20권을 별도로 출판하였으므로, 그중 『이방인』의 ‘해설’이 아닌 짧은 머리말, 전집을 마감하며 제20권째로 번역한『시사평론』의 「번역을 마치며」, 그리고 전집에는 포함하지 않고 별도로 출판한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의 ‘역자의 말’만을 여기에 남겨놓았다. 이 책은 김민정 시인의 너그러운 시선과 열정적인 도움, 그리고 대한민국예술원의 지원에 힘입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15년 11월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에 처음 읽은 알베르 카뮈는 대학과 대학원, 프랑스 유학과 박사학위를 거쳐 귀국 후 30여 년간의 대학 강의와 수다한 글들을 통해 내 일생을 관통하는 감성과 사유의 풍경 그 자체가 되고 말았다. 나는 카뮈와의 첫 만남으로부터 반세기의 세월이 지난 후 마침내 그 풍경의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나는 결국 알제리에, 티파사에 가 닿았다. 한 인간에 의하여 이룩되는 작품이란 "예술이라는 위회의 길들을 거쳐 처음으로 가슴을 열어보였던 두세 개의 단순하고도 위대한 이미지들을 다시 찾기 위한 기나긴 행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카뮈는 말하지 않았던가.

나눔의 세계 : 알베르 카뮈의 여정

카뮈는 일생 동안 타자와의 연대와 사랑을 통해서 무의미한 삶에 역동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참여 행위이고 사랑과 긍정을 바탕으로 한 윤리였다. 그 결과 궁극적으로 그가 지중해에서 출발하여 유럽을 거쳐 도달한 ‘세계’는 단순히 공간적인 넓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동운명체로서 함께하고 나누는 인간 보편의 삶, 그리고 나아가 생태계 전체의 삶과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

나는 책을 사들고 기차에 오르는 즉시 문장은 짧고 여운은 긴 이 소설의 매혹에 빨려들고 말았다. 책을 다 읽고, 그후 몇 번이나 다시 읽고, 그리고 번역을 하고 마침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그 짧은 문장들 사이에서 배어나오는 기이한 적요함, 거의 희열에 가까울 만큼 해맑은 슬픔의 위력으로부터 완전히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 - 김화영 (문학평론가)

여기, 우리들에게서 가장 먼…… 그래서 가장 가까운……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 단장한 아름다움의 섬, 어머니의 섬…… 보로메의 섬들이 여러분을 기다린다.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城)

굳게 잠긴 방의 이야기, 허물어진 성벽의 이야기, 마음속에, 꿈속에 지은 성의 이야기이다. 아니 그것도 아직은 아니다. 다만 나는 사람들이 저마다 찾아가는 성, 저마다의 시간으로 짓는 성, 그곳에 이르기 전에 성 밖 마을에 잠시 들렀던 이야기를 조금 했을 뿐이다. 이제부터 떠나야 할 사람은 당신 자신이다.

알베르 카뮈 전집 특별판 - 전7권 (양장)

사람들은 늙어 사라져도 카뮈의 작품은 조금도 늙지 않았다. 《이방인》은 오늘날에 새로이 떠오르는 그 어느 소설 못지않게 젊고 《전락》은 그 어떤 첨단의식보다 신랄하다. 스탈린식 공산주의의 위험을 경고하고 세계화 시대를 예감했던 카뮈의 ‘시사적’인 목소리는 조금도 늙지 않았다.

여름아, 옷을 벗어라

여름에는 모든 것이 단순해진다. 풀과 나무가 제 몸의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초록의 속살을 자랑스레 내보이듯 마음아, 거추장스런 옷을 벗어라. 그리고 삶의 비어있는 중심을 향해 곧장 달려가서 여름의 벼락치는 시인이 되어 보자.

여름의 묘약

오래된 현재 1969~2012 1969년 어느 날 나는 문득 엑상프로방스에 도착했다. 내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프랑스 외무성이 지정해준 곳이었다. 그 도시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던 나는 스물일곱 살이었고 혼자였다. 그날 이후 나의 삶은 프로방스를 향하여 밝고 넓은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 고장의 빛과 향기는 내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행복의 충격'이 되었다. 1977년 나는 신혼의 아내와 함께 프로방스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첫딸을 얻었다. 매 순간의 여름빛은 영원한 현재가 되었다. 30여 년이 지나, 아내와 나는 지난 두 번의 여름을 프로방스에서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프로방스에서 파리까지 느린 여행길에 올랐다. 이것은 긴 세월 동안 남(南)프랑스의 여름빛이 숙성시킨 사랑의 묘약 이야기다. 그리고 여행길의 풍경 속에 지워지지 않는 지문을 남긴 문학의 이야기다. 2013년 6월

일러스트 이방인

첫 페이지에 죽음, 마지막 페이지에 죽음, 그리고 책의 심장부에 죽음. 그러나 페이지마다 눈부신 태양이 가득히 내리쪼이는 밝고 투명한 소설.

잃어버린 거리

모디아노의 소설은 나직하고 끊어져 쉬는 데가 많은 옛 노래, 지금은 다 잊은 줄 알았다가도 다시 들으면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 마음의 현이 오래오래 진동하는, 그런 노래와도 같다.

좁은 문

이 작품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의 피 흐르는 생살 속에 새긴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짧은 이야기 긴 사연

이번 단편집에 실린 열세 편의 단편들은 남달리 긴 인생행로를 거쳐온 작가가 저만큼 거리를 두고 ‘붕괴되어가는’ 삶을 향해서 던지는 때로는 매섭고 때로는 유머러스하며 또 때로는 연민 가득한, 그러나 언제나 투명한 시선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단편소설에서 삶의 ‘붕괴’는 너무나도 긴 세월에 걸친 점진적인 과정이어서 인물들은 가끔 그것이 사랑이라고, 행복이라고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면, 거기 세월에 바래고 삭아버린 삶 전체를 굽어보는 작가의 차디찬 시선이 나직하게 위로하듯 절망을 말해준다.

청춘 시절

모디아노의 소설들 가운데서도 나로서는 가장 애착을 느껴온 작품이다.

최초의 인간

모든 인간은 다 어느 만큼은 〈주워 온 아이〉이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그리고 혼자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타인에게로 〈눈뜨며〉 다시 태어나야 하는 〈최초의 인간〉이다.

토마의 무한 여행

"‘무한’은 신비스러운 것이지만 동시에 무섭고 슬픈 것인지도 모릅니다. 무한을 제 눈으로 보고 난 뒤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으로 되돌아온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토마처럼 ‘무한은 어디서 끝나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늘 안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질문이 영원한 질문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같이 꿈을 꾸고 상상을 하고 또 새로운 희망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요? 소년 토마의 고통스러운 병과 죽음의 이야기인 이『토마의 무한 여행』이 읽는 사람에게 슬픔이나 고통보다는 신비스러운 상상의 여행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무한이 불러일으키는 무한한 매력 때문일 것입니다." - 옮긴이 해설에서

팔월의 일요일들

이렇게 순간순간의 파편으로 바스라지는 우리의 삶, 잠시 빛을 받아 감광지 위에 고착된 고립적 영상, 그것이 ‘사진’이라면 그 사진과 대립되는 것이 바로 큼지막한 다이아몬드 ‘남십자성’이다. 그것은 단단함과 연속성, 통일성의 아름다움이요 빛이다. 그것은 덧없는 인간적 삶을 초월하는 영원, 사물로 헌신한 영원 바로 그것이다. (……) 영원이 덧없음의 목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모두 사라졌다. ‘내’가 다시 찾고자 하는 대상은 잃어버린 실비아일까 잃어버린 다이아몬드일까? 모디아노의 새로운 소설 한 편 한 편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매번 같으면서도 그 빛과 색깔이 변하는 대답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책을 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그만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하여 그 나직하고, 그러면서도 좀 다급한 목소리가 나를 따라다녔다. 하마터면 수십 년 동안 참았던 울음을 퍽, 하고 터뜨릴 뻔했다.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

나를 매혹시킨 것은 소설을 구성하는 이야기보다 삶의 진실에 대한 의문과 진정한 삶에 대한 갈망에 사로잡혀 분류처럼 세차게 달려온 그 젊은이의 내면적 에너지였다. 그 에너지가 나를 밤낮없이 그 책의 번역에 집중적으로 매달리게 했다. 소설 속에는 가시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장소들과 인물들과 사건들 못지않게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자신의 젊은 시절을 숨가쁜 현실로 소생시키는 작가의 내면적 불덩어리와 호흡이 깃들어 있다. 그 뜨거움과 가쁜 숨소리는 저 삶의 중심에서 타오르는 열정의 에너지다. 번역자로서의 나는 무엇보다도 그 가쁜 숨소리와 가슴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길의 힘과 속도를 고스란히 살려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번역을 시작하자 말자 거의 밤낮을 쉬지 않고 빠른 속도로 달렸다. 원문의 의미 못지않게 나 자신의 내면에서 솟구쳐오르는 어떤 뜨거운 힘과 속도가 방해받지 않도록 뒤돌아보지 않은 채 계속하여 달렸다.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