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이 무거운 날엔 시집을 골라 가방 안에 넣고 집을 나선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보다 밖의 풍경이 심드렁해지면 시집을 꺼낸다. ‘차례’ 페이지를 펼쳐 요새의 관심사와 닿아 있는 제목의 시를 찾아 그 시부터 읽는다. 동물원에 가고 싶으니까 「동물원」을, 여름이 막 끝났으니까 「여름의 애도」를 먼저 읽는 식이다. 정말 닿아 있다면 좋고 아주 달라도 그것도 좋아한다.
하얀 종이 위의 검은 글자뿐인데 시집은, 여기에서 저기로 이 마음에서 저 마음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어떤 냄새가 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차갑기도 하다.
바깥의 풍경이 더 좋다면 펼치지 않아도 괜찮아,
나를 이해하지 않아도, 오해해도 괜찮아,
너는 그런 사람이어도 괜찮아.
시가 괜찮다고 말한다.
다 괜찮다고 말해 주는 시집을 보다 보면 정말 많은 것들이 괜찮아지곤 한다.
여기에서 저기로 이 마음에서 저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다. 가늘고 하얗게 모여 서 있는 시집들 사이에 가방 안의 시집을 꺼내어 꽂는다. 바깥은 어둑하고, 촘촘해진 책등의 흰빛은 더 밝아졌다. 오늘도 괜찮은 하루가 지나갔다.